슈슈는 강아지처럼 에르빌의 품을 파고들며 바르작거렸다. “너무 좋아. 죽을 만큼.” “…….” 에르빌은 슈슈의 등을 토닥일 뿐 별다른 감정 표현을 자제했다. 아직 어린 그녀가 사내의 맛을 보기라도 한다면 언제고 잊힐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기에 마음 한구석이 쓸쓸해졌다. “슈슈, 당신이라서 좋은 거야. 내 몸과 마음이 반응하는 건.”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에르빌, 아니 엘르 사랑해요.” 그녀의 사랑 고백을 받은 에르빌은 등골이 오싹하며 눈물이 핑 돌았다. 말도 안 될 일이다. 사랑 고백을 하지 않는 건 짝들과 무언으로 약속한 언약 같은 것이었다. 왕국의 알게 모르게 남편이 있어도 애인을 두는 여인들부터 새로 시작하는 연인들까지 사랑한다고 고백하면 불행이 닥친다는 징크스가 있었다. 에르빌은 말없이 겉옷을 집어 들어 슈슈의 알몸을 감쌌고 그대로 안고 잠이 들었다. *** 체자레는 여왕에게도 차이고 에르빌의 공작가에서도 내쳐지며 후원이 끊겼던 찰나 아주 귀한 장면을 목격했다. 그건 에르빌과 슈발리에 공주의 정사 장면이었다. ‘훗 요것들 봐라. 잘만 하면 한밑천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는 누구를 찾아가서 이 사실을 알릴까, 고민했다. 그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떠올린 사람은 에르빌이 아닌 여왕 이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