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좋아하는 작가들 지원하게 해 줬으면 너도 이 정도는 해야지?” 뜻하지 않게 비리로 점철된 문화 재단에서 돈세탁하는 일을 맡게 된 연진의 일상은 마른 낙엽처럼 버석하기만 하다. “정도를 모르고 비리를 저질러서 정도 재단이잖아, 거기.” 사람들의 비웃음을 견뎌 내며 평소처럼 돈세탁 경과를 보고하고 회장실을 나오는 길, 낙담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들어선 갤러리 골목에서 그림 한 점이 눈에 들어온다. 「연선우. 감정 연작.」 차갑고 선명한 색채. 뭉툭한 표현에 담긴 섬세한 감정.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포근하지만 우울한 정서. 가슴 한구석이 부러진 시계추처럼 쿵 내려앉았다. 애써 외면했던 갖은 감정이 캔버스 위에 복사라도 하듯 그대로 옮겨져 있었기에. 고작 선우의 그림을 더 보고 싶었을 뿐이었던 그날의 연진은 알지 못했다. 선우의 연한 눈이 선연한 욕망을 머금고 저를 향해 빛나게 될 줄은. “제안 하나 할게요.” “무슨…….” “우리 나쁜 짓 한 번만 해요.” 빛이 연하다고 생각했던 눈동자가 어느새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어 그 안에 빠져들 만큼.